[Vogue Girl, September 2015]치약의 맛 1 버터 크림처럼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 디알 해리스의 ‘투스페이스트 스피아민트’. 2 신선하고 기운 넘치는 민트 맛. 닥터 리베의 ‘아요나’. 3 강렬한 멘소레담 향. 유시몰의 ‘오리지날 투스페이스트’. 4 물파스처럼 강한 멘톨 맛. 달리의 ‘더블액션 민트’. 5 묵직하고 리치하지만 깔끔한 맛. 블렌다메드의 ‘프로 엑스퍼트’. 6 소프트한 크림 젤 타입. 테라 브레스의 ‘투스페이스트 위드 알로에 베라’. 7 순하고 크리미한 질감은 쿠토의 ‘파스타 덴티프리카’. 8 생과일 주스처럼 건강한 맛. 닥터 하우시카 메드의 ‘스트롱 민트 투스페이스트.’ 9 톡 쏘기보다는 깨끗하고 부드러운 마비스의 ‘아쿠아틱 민트’. 10 자몽 향이 느껴지는 쿠치올로 베이비의 ‘투스페이스트 레드 프룻’. 11 자극적이지 않고 소프트한 민트 향. 킹피셔의 ‘내추럴 투스페이스트 알로에 베라 티트리 민트’. 12 기분 좋은 카렌듈라 향. 벨레다의 ‘췰드런스 투스 젤’. 13 약간 떫지만 마무리는 깨끗한 엘멕스의 ‘아미노 플루오린 나이트 투스페이스트’. 패션 블로거나 디자이너, 모델, 포토그래퍼까지 나름 패션 피플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인터뷰에는 종종 ‘다이어트 코크와 맥주 중 포기하기 힘든 쪽은?’ 혹은 ‘최근 다운받은 뮤직 리스트는?’과 같은 식의 일종의 ‘자리 메우기’ 질문들이 등장한다. 사실 이런 질문들은 어떤 내용이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때론 그날 아침에 먹은 메뉴가 될 수도 있고, 캔들 취향에 관한 것처럼 사치스럽거나 좋아하는 철학자처럼 사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어째서인지 유난히 치약에 관한 질문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 림의 첫 번째 겐조 컬렉션 이후 수많은 매체에서 그들의 인터뷰를 다루었다. 대부분이 컬렉션의 영감이나 오프닝 세리머니와 겐조를 어떻게 분리해서 작업하는지와 같은 다분히 비즈니스적인 내용이었는데, 어떤 매거진에서는 두 사람에게 공통되는 마지막 질문을 이렇게 던졌다. “매일 어떤 치약을 사용하세요?” 이에 캐롤이 “마비스”라고 대답한 반면, 움베르토는 “클래식하고 깨끗한 탐스가 더 좋다”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우리가 백스테이지나 스트리트에서 만난 모델들의 파우치 속에 어떤 립스틱이나 마스카라가 들어 있는지 궁금해했었다면, 이제는 그들이 갖고 있는 치약이나 미네랄 워터, 비타민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재작년에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이 본인의 페이버릿 리스트를 소개하는 책에 마비스를 예찬하면서 이탈리아를 여행하는사람들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와 함께 마비스를 ‘깔’별로 사들이게 만들기도 했다. 정작 이탈리아 현지인들은 거의 쓰지 않는 그 비싼 치약을 말이다. 에디터 역시 마찬가지다. 밀라노에서는 마비스, 런던에서는 유시몰, 베를린에서는 아요나와 닥터 하우시카의 치약을 종류별로 채워왔으니까. 물론 전부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마비스는 가끔씩 본전 생각이 나게 만들었고, 유시몰은 멘소레담 로션을 그대로 삼킨 듯 향이 자극적이다. 물론 둘 다 외형은 치약치곤 지나치게 훌륭하다. 유시몰은 100년도 더 된 치약인데, 우리 선조들이 소금으로 입 안을 헹굴 때 영국 사람들은 이런 빈티지한 화이트 튜브에 들어 있는 딸기 우유색 크림으로 이를 닦은 거다. 반면 아요나와 닥터 하우시카 같은 독일 치약들은 좀더 기능적이다. 처음 사용할 땐 분말이 느껴지는 데다 거품도 잘 나지 않는 제형이 거북하게 느껴졌는데, 스케일링한 것처럼 개운한 마무리감 때문에 쓸수록 중독되는 느낌이다. 특히 아요나는 종종 피가 나고 쉽게 붓는 잇몸 질환에 확실히 효과적이다. <엘르>의 피처 에디터 이경은이 추천한 엘멕스와 블렌다메드도 독일 제품이다. 엘멕스는 나이트 타임용 불소 치약으로, 이를 닦아내기보다는 치아를 크림으로 덧칠하는 듯한 일종의 의약품에 가까운 텍스처라 할 수 있다. 인공적인 민트 향이나 단맛이 전혀 남지 않아 선천적으로 치아가 무르고 약해 쉽게 충치가 생기는 걸들에게 적합하다. 블렌다메드는 치아에 착색된 니코틴을 엷게 해주는, 헤비 스모커들이 기억해두어야 할 만한 치약이다. 무겁고 리치한 텍스처로 치아에 왁스 칠을 한 것처럼 뻑뻑하게 코팅된 느낌만 남는다. <데이즈드 & 컨퓨즈드>의 피처 에디터 이상희가 추천한 캐나다의 테라 브레스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입냄새 제거에 뛰어난 치약으로 구취를 발생시키는 항산화 물질들을 없애주는 성분으로만 되어 있다. 특별한 맛이라기보다는 입 안에 어떤 맛도 남기지 않는 깨끗한 향이다. <GQ>의 패션 에디터 오충환이 추천한 영국의 닥터 해리스와 포르투갈의 쿠토는 남자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치약들이다. 영국 왕실에서도 사용하는 닥터 해리스는 입 속에서는 향도 강하고 거품도 풍부하지만, 헹군 후에는 어떤 향도 알싸한 느낌도 일절 남기지 않는 고상한 맛에 가깝다. 쿠토는 입 안을 살균하고 소독하는 데 효과적인 약용 치약으로 크리미하면서도 적당히 매콤한, 기운차고 깔끔한 맛이다. 이쯤이면 짐작하겠지만 지금 패션 피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치약의 맛이란 우리가 지금까지 좋아하던 그런 맛과는 제법 차이가 있어 보인다. 거품이 잘 나는 개운한 페퍼민트나 껌을 씹은 듯 향긋한 과일 향이나 꽃 냄새가 나는 건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덜 익은 감 껍질처럼 텁텁하거나 떫고, 질감도 부드러운 거품보다는 석고처럼 무겁고 퍽퍽하다. 민트 향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의 치약처럼 달달한느낌이 아니라 생 민트 주스 같은 건강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우리가 치약의 맛을 따지기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 옛날 우리가 딸기 맛, 포도 맛, 풍선껌 맛, 초콜릿 맛으로 구분되던 어린이 치약을 얼마나 신중하고 까다롭게 골랐었는지를 떠올려보자. 엄마가 마트에서 사다 놓은 죽염 치약만 쓴다거나 치약은 무조건 거품이 잘 나고 뽀드득해야 한다는 예스런 고집만 없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치약을 골라낼 수 있을 거다.